제3부 일반상대성이론
제6장 — 엘리베이터에서 시작된 중력 이론
예상 읽기 시간 약 12분
떨어지는 사람에게 중력은 사라진다
1907년의 어느 날, 베른 특허청의 의자에 앉아 있던 아인슈타인의 머릿속에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15년 뒤인 1922년, 교토에서 열린 강연 「나는 어떻게 상대성이론을 창조했는가」에서 그는 그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베른 특허청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유롭게 낙하한다면, 그는 자신의 무게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건물 옥상에서 떨어지는 사람은 위험하지만, 낙하하는 짧은 순간에는 손에 든 물건과 함께 떠 있는 듯 느낀다. 중력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사람과 물건이 같은 방식으로 자유낙하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순간을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생각’이라 불렀다. 특허 신청서 더미 사이에서 떠오른 이 평범한 관찰 하나가, 8년 뒤 완성될 일반상대성이론의 첫 씨앗이었다.
반대로 중력이 없는 우주선이 가속하면 바닥 쪽으로 누르는 힘이 생기고 빛의 경로도 휘어 보인다. 중력과 가속 사이의 이 관계가 등가원리다. 이제부터 볼 것은, 이 단순한 관찰 하나가 방정식 한 줄 없이 순전한 논리만으로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1. 왜 특수상대론만으로 부족한가
특수상대론은 서로 등속운동하는 관성계를 동등하게 다룬다. 하지만 현실의 관측자는 가속하고 회전하며 중력장 속에 있다. 가속계를 단순히 ‘나쁜 좌표계’로 밀어내면 상대성원리의 범위가 제한된다.
1907년 논문 「상대성원리와 그로부터 이끌어낸 결론들」은 특수상대론을 종합하면서 마지막 부분에서 가속계와 중력의 연결을 탐색한다. 이 논문은 일반상대론의 완성본이 아니지만 등가원리, 중력적 시간 변화와 빛의 주파수 변화로 가는 첫 단계다.
2. 관성질량과 중력질량
뉴턴 역학에서 관성질량은 힘에 얼마나 저항하는지를, 중력질량은 중력을 얼마나 받고 만드는지를 나타낸다. 두 값이 비례하기 때문에 공기저항을 무시하면 서로 다른 물체가 같은 가속도로 떨어진다.
아인슈타인은 이 일치를 우연한 수치 관계가 아니라 중력의 본질을 알려 주는 원리로 해석했다. 작은 자유낙하 실험실 안에서는 모든 물체가 함께 떨어져 중력 효과가 사라진다. 반대로 일정하게 가속하는 실험실에서는 중력장과 비슷한 효과가 나타난다.
3. 엘리베이터 사고실험
이제 실험실을 하나 상상해 보자. 창문이 하나도 없는 엘리베이터 한 칸이다. 문도 잠겨 있고 바깥을 내다볼 방법은 전혀 없다. 이 상자는 두 가지 상황 가운데 하나에 놓여 있다 — 행성 표면에 가만히 서 있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 우주 공간 한복판에서 로켓에 매달려 위쪽으로 일정하게 가속하고 있거나. 상자 안의 사람에게는 둘 중 어느 쪽인지 알아낼 방법이 있을까?
발밑의 저울에 올라서 보면 체중이 그대로 찍힌다. 손에 쥔 동전을 놓으면 초당 일정하게 빨라지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진자를 매달아 흔들어 봐도, 물이 든 그릇을 기울여 봐도 결과는 똑같다. 그가 무슨 실험을 고안하든 — 아는 물리학 지식을 모두 동원하든 — 상자 안에서 얻는 답은 언제나 하나다. 두 상황을 가르는 실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등가원리가 주는 첫 번째 충격이다. 중력과 가속은 그저 ‘비슷한’ 것이 아니라, 국소적으로는 조금의 차이도 없이 구별 불가능하다.
여기서 아인슈타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두 상황이 정말 완전히 같다면, 가속하는 상자 안에서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일은 중력장 속에서도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 그 일이 아무리 뜻밖이라 해도.
그래서 그는 상자 벽에 작은 구멍을 뚫고 손전등을 켠다고 상상한다. 빛줄기가 한쪽 벽에서 반대쪽 벽을 향해 수평으로, 완벽하게 곧게 날아간다. 상자가 가만히 떠 있었다면 그 빛은 처음 나온 높이 그대로 맞은편 벽에 닿았을 것이다. 그런데 상자는 지금 위로 가속하고 있다. 빛이 상자를 가로지르는 그 짧은 시간에도 바닥은 조금씩 더 빠르게 위로 올라온다. 빛이 맞은편 벽에 닿을 즈음, 그 벽은 처음보다 살짝 더 높이 올라와 있다 — 그러니 빛은 상자 안의 사람이 보기에 수평으로 날아가는 대신, 아주 살짝 아래로 처지는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 셈이 된다. 바깥의 정지한 관찰자에게는 빛이 언제나처럼 완벽한 직선을 그렸을 뿐인데, 가속하는 상자 안의 관찰자에게는 그 직선이 휘어 보인다.
방금 등가원리를 받아들였다면 이제 물러설 곳이 없다. 가속하는 상자에서 빛이 휘어 보인다면, 중력장 속에 가만히 서 있는 상자에서도 빛은 똑같이 휘어야 한다. 뉴턴의 어떤 법칙도 이런 일을 요구하지 않았다. 빛에는 질량이 없고, 뉴턴의 중력은 질량을 지닌 것들끼리만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순전히 논리의 힘만으로 — 새 실험도, 새 관측자료도 없이, 그저 ‘가속과 중력은 구별할 수 없다’는 문장 하나를 끝까지 밀어붙였을 뿐인데 — 태양처럼 무거운 별 옆을 지나는 빛줄기가 살짝 휘어야 한다는 결론이 튀어나온다. 1919년 에딩턴의 개기일식 관측대가 실제로 확인하러 떠나게 될 바로 그 예측이, 특허청 사무원의 사고실험 속에서 이미 조용히 태어나 있었다(관측과 이론값의 실제 비교는 8장에서 다룬다).
아인슈타인의 대중서에서 엘리베이터 사고실험 펼쳐보기
원전과 함께 읽기 — 대중서 속 가속하는 상자와 중력장
아인슈타인의 대중서에서 실험실은 오늘날 흔히 말하는 ‘엘리베이터’보다 조금 더 기묘하다. 별도 중력도 거의 없는 텅 빈 공간에 방처럼 큰 상자가 떠 있고, 그 안의 사람은 작은 충격에도 천장으로 떠오르지 않도록 몸을 바닥에 묶어야 한다. 그러다 상자 뚜껑에 매인 밧줄을 정체불명의 존재가 일정한 힘으로 잡아당긴다.
“상자 속 사람은 이 과정을 어떻게 생각할까? 상자의 가속은 바닥의 반작용을 통해 그에게 전달된다. 바닥에 길게 쓰러지고 싶지 않다면 그는 두 다리로 이 압력을 견뎌야 한다. 그러므로 그는 지구 위 방 안에 서 있는 사람과 똑같이 상자 안에 서 있게 된다.”
그가 손에 든 물체를 놓으면 상자가 위로 가속하는 동안 물체는 바닥으로 다가간다. 어떤 재료로 실험해도 낙하 가속도는 같다. 상자 안의 사람은 자신이 가속 중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자신은 중력장 속에 정지해 있고 천장의 밧줄이 상자를 매달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 사람을 보고 웃으며 그의 결론이 틀렸다고 말해야 할까? 일관성을 지키려 한다면 나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가 상황을 이해하는 방식이 이성에도, 알려진 역학 법칙에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대목의 힘은 ‘가속과 중력이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데만 있지 않다. 서로 다른 두 설명 가운데 하나만 진짜이고 다른 하나는 착각이라고 판정할 내부 실험이 없다면, 가속하는 준거계도 자연법칙을 기술하는 정당한 관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다. 특수상대론이 등속운동하는 관성계의 동등성을 말했다면, 일반상대론은 이 정당성을 가속계까지 넓히려 한다.
그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관찰이 바로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의 동일성이다.
“이 해석이 가능한 까닭은 중력장이 모든 물체에 같은 가속도를 준다는 기본 성질, 다시 말해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이 같다는 법칙에 있다는 점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이 자연법칙이 없다면 가속하는 상자 속 사람은 주변 물체의 행동을 중력장으로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나무공과 쇠공이 중력장에서 서로 다른 가속도로 떨어진다면, 상자 속 사람은 물체마다 똑같이 작용하는 상자의 운동과 물체마다 다르게 작용하는 중력을 구별할 수 있다. 모든 물체가 같은 방식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중력장 속 정지’와 ‘중력 없는 공간에서의 가속’이라는 두 서술이 국소적으로 같은 물리현상을 나타낼 수 있다. 경험적으로 알려진 질량의 동일성이 일반상대성원리의 문을 연 셈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비유가 지나치게 멀리 달아나는 것을 곧바로 막는다.
“어떤 중력장이든 다른 준거물체를 골라 항상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것은 모든 중력장에 대해 참인 것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형태의 장에 대해서만 참이다. 예컨대 지구 중력장 전체가 사라지도록 하는 준거물체를 고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균일한 가속과 균일한 중력은 작은 실험실에서 대응하지만 지구 전체의 중력은 위치마다 방향과 세기가 달라진다. 자유낙하 좌표계는 한 지점 부근의 중력을 지울 수 있어도, 멀리 떨어진 두 물체가 서로 모이거나 벌어지는 조석효과까지 없애지는 못한다. 대중서의 상자 사고실험은 따라서 ‘중력은 전부 착각’이라는 결론이 아니라, 국소적으로 지울 수 있는 중력과 넓은 영역에 남는 곡률을 구분하는 출발점이다.
4. 높은 시계와 낮은 시계
빛의 휨을 이끌어 낸 것과 똑같은 상자, 똑같은 논리 하나로 이번에는 시간 그 자체를 겨눠 보자. 가속하는 로켓의 바닥에서 천장을 향해 빛을 쏘아 올린다고 하자. 빛이 바닥을 떠나는 순간과 천장에 닿는 순간 사이, 로켓은 계속 가속하고 있으므로 천장은 처음보다 더 빠른 속도로 그 빛을 향해 마주 달려가고 있다. 빛을 뒤쫓아 스스로 속력을 높이는 과녁에 화살이 꽂히는 셈이니, 천장에서 받는 빛은 바닥에서 쏘았을 때보다 파장이 늘어나 붉은 쪽으로 치우쳐 보인다 — 소리로 치면 멀어지는 구급차의 사이렌이 낮게 들리는 것과 같은 도플러 효과다.
등가원리를 여기에도 그대로 적용하면, 가만히 서 있는 중력장 속에서도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는 빛은 똑같이 붉은 쪽으로 치우쳐야 한다. 그런데 빛의 파장이 늘어난다는 것은 빛이 ‘똑딱거리는 속도’, 곧 진동수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빛도 하나의 시계라면, 중력이 더 센 아래쪽에서 온 빛은 더 느리게 똑딱이는 시계에서 나온 셈이 된다. 같은 사실을 뒤집어 말하면, 중력 퍼텐셜이 낮은 곳(더 깊은 우물 바닥)에 놓인 시계는 높은 곳의 시계보다 실제로 더 느리게 간다. 지하실의 시계와 옥상의 시계는, 아무리 똑같이 정밀하게 만들어졌어도 서로 다른 속도로 나이를 먹는다.
여기서 잠시 멈춰 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동원한 도구는 상자 하나, 손전등 하나, 그리고 ‘가속과 중력은 구별되지 않는다’는 문장 하나뿐이었다. 방정식도, 새로운 관측자료도 없었다. 그런데 그 결과로 빛이 휘고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장소마다 달라진다는, 뉴턴의 우주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두 가지 결론이 나란히 튀어나왔다. 이 결론을 정량적으로 옮기면 약한 중력장에서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Δf/f ≈ ΔΦ/c²
이 예측은 뒤에 Pound–Rebka 실험과 Gravity Probe A, 원자시계로 시험된다.
5. 1911년 빛의 휨
1911년 「중력이 빛의 전파에 미치는 영향」에서 아인슈타인은 등가원리를 이용해 중력적 적색편이와 태양 주변 빛의 휨을 정량적으로 계산했다. 그러나 이 계산의 편향값은 1915년 완성된 일반상대론 값의 절반이었다. 당시 계산에는 시간 변화의 효과가 들어갔지만 공간 곡률의 완전한 기여는 아직 없었다.
이 차이는 실패담이 아니라 이론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등가원리는 방향을 제시했지만 완전한 장방정식과 시공간 기하가 필요했다. 제8장에서는 1911년 예측과 1915년 예측, 1919년 관측을 구별해 비교한다.
6. 등가원리의 한계: 조석력
중력과 가속은 작은 영역에서만 완전히 구별되지 않는다. 지구를 향해 떨어지는 두 물체의 경로는 지구 중심을 향하므로 조금씩 가까워지고, 머리와 발에는 서로 다른 중력이 작용한다. 이런 조석력은 하나의 균일한 가속계로 전체 영역에서 제거할 수 없다.
한 점에서 좌표를 잘 선택해 중력을 지울 수 있어도 넓은 영역에서 남는 조석효과가 시공간 곡률의 물리적 흔적이다. 등가원리는 ‘중력은 가짜 힘’이라는 결론이 아니라 중력을 기하학으로 옮기는 문이다.
1907년부터 1912년까지 — 등가원리와 정적 중력장 원전 모아보기
원전과 함께 읽기 — 1907년 등가원리에서 1911년 빛의 휨까지
1907년: 시계가 중력의 높이를 기억한다
“그 과정이 일어나는 곳의 중력 퍼텐셜이 클수록, 그 진행은 그만큼 더 빠르다.”
「상대성원리와 그로부터 이끌어낸 결론들」 제19절에서 아인슈타인은 서로 다른 중력 퍼텐셜에 놓인 동일한 시계가 같은 속도로 가지 않는다고 결론 내린다. 이어 태양 표면에서 오는 스펙트럼선의 파장이 지상의 같은 물질이 내는 빛보다 약 200만분의 1 길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완성된 일반상대론 이전에 제시된 중력적 시간 변화와 적색편이의 씨앗이다.
1911년: 빛의 휨을 관측에 묻다
“태양 가까이를 지나는 광선은 태양의 중력장에 의해 휘며, 따라서 태양 가까이에 보이는 항성과 태양 사이의 각거리는 거의 1각초만큼 커 보인다.”
1911년 논문의 계산값은 태양 가장자리에서 (0.83)각초였다. 등가원리를 이용한 이 예측은 빛이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는 정량적 제안이었지만, 아직 공간 곡률의 기여가 빠져 있었다. 1915년의 완성된 이론은 약 (1.75)각초를 주었다. 두 값을 나란히 보면 등가원리가 출발점이지 완성된 이론 전체는 아니었다는 점이 드러난다.
원전과 함께 읽기 — 1912년 「빛의 속도와 중력장의 정역학」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명제는 오직 중력 퍼텐셜이 일정한 시공 영역에 대해서만 타당성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비록 이 결과가 로렌츠 변환의 일반적 적용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미 들어선 길을 계속 따라가는 것을 단념할 이유는 없다.”
1912년의 아인슈타인은 성공한 특수상대론의 가장 유명한 명제를 아무 조건 없이 되풀이하지 않는다. 중력을 포함하려면 그 명제가 어디까지 유효한지부터 다시 묻는다. 그리고 서로 다른 중력 퍼텐셜의 두 지점을 비교하는 일을 ‘빛 자체가 장소마다 본질적으로 달라진다’는 말이 아니라 시계의 비율이 달라진다는 말로 바꾸어 설명한다.
“만약 어떤 점 P에서의 빛의 속도가 다른 점 P₀에서보다 c/c₀배 크다고 말한다면, 이는 곧 우리가 P에서 시간을 측정할 때 P₀에서 시간을 측정하는 데 쓰는 시계보다 c/c₀배 느리게 가는 시계를 써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 달리 말하면, 시계는 그것을 c가 더 큰 곳으로 옮길수록 더 빨리 간다.”
이 표현은 오늘날의 완성된 국소 시공간 언어와 같지 않지만, 중력장을 단지 물체를 잡아당기는 힘으로 보지 않고 시간 측정의 구조와 연결한 사고의 도약을 보여 준다. 동시에 그는 이 스칼라 빛속도 모형의 한계도 숨기지 않았다.
“이로써, c의 보편적 불변성을 포기하는 순간, 무한소 시공 영역에 대해서조차 로렌츠 변환을 고수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된다.”
이 난점은 실패의 기록이면서 다음 발견의 문이다. 하나의 함수 c만으로 중력을 나타내려던 정적 이론은 곧 계량텐서 전체로 시공간을 기술하는 방향으로 넘어간다.
다음 장으로 — 중력은 어떻게 시공간의 곡률이 되었나
등가원리는 중력과 가속의 깊은 관계를 보여 주었지만 넓은 영역에 남는 조석력을 설명할 수학은 아직 없었다. 물체가 힘에 끌리는 대신 휘어진 시공간에서 가장 곧은 길을 따른다고 말하려면 거리와 곡률의 언어가 필요하다. 그 언어를 리만과 그로스만이 제공한다.
이 장의 인물
에른스트 마흐 P05
1838–1916
「역학의 발달」(1883)
뉴턴의 절대공간 개념을 비판하고, 관성이 우주 속 다른 물질과의 관계에서 비롯한다는 관계론적 해석을 제시했다.
다음 단계에 건넨 것
절대공간이라는 무대 없이도 관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물음을 아인슈타인에게 넘겨 등가원리로 가는 길을 열었다.
아인슈타인 원전 — 빛의 속도와 중력장의 정역학 1-02
프라하 시절,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속도로 중력을 다루려 한 과도기 논문.
수식 심화
중력이 강한 곳에서 빠져나오는 빛은 왜 진동수가 낮아지는가?
$$ \frac{\Delta f}{f} \approx \frac{\Delta \Phi}{c^2} $$
Δf/f — 빛의 진동수가 변하는 비율 / ΔΦ — 두 지점 사이의 중력 퍼텐셜 차이 / c — 광속
등가원리에 따르면 중력장 속에서 위로 올라가는 빛은 마치 가속하는 로켓 안에서 위로 쏜 빛처럼 진동수를 잃는다. 중력이 강할수록(ΔΦ가 클수록) 빛의 '피로'도 커진다.
적용 한계 — 이 근사식은 중력장이 약할 때(태양계 규모)만 성립한다. 블랙홀 근처처럼 중력이 극단적으로 강한 곳에서는 완전한 일반상대론 계산이 필요하다.
실험·관측
이 장의 계보
에른스트 마흐(절대공간 비판)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등가원리, 1907) → 파운드–레브카 실험·Gravity Probe A(검증)
마흐의 철학적 비판이 등가원리 구상의 동기가 되었고, 이 원리는 반세기 뒤 실험으로 검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