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일반상대성이론

제7장 — 중력은 어떻게 시공간의 곡률이 되었나

“뉴턴의 중력은 어떻게 시공간의 곡률이 되었나”

예상 읽기 시간 약 12분

1915년 11월, 매주 우주의 법칙을 고친 사람

1915년 11월의 베를린. 목요일이 돌아올 때마다 프로이센 과학아카데미의 참석자들은 조금 기묘한 광경을 보았다. 아인슈타인이 또 새 논문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4일에 방정식을 발표했고, 11일에 고쳤으며, 18일에는 그것으로 수성의 궤도를 계산했다. 25일에는 다시 고친 최종 방정식을 내놓았다. 세계의 중력법칙을 발표하는 사람이 그 법칙을 매주 수정하고 있었으니, 청중은 완성품 발표회가 아니라 역사상 가장 긴박한 공개 작업실에 앉아 있었던 셈이다.

제6장에서 우리는 출발점을 보았다. 자유낙하하는 사람은 무게를 느끼지 못한다. 작은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중력과 가속을 구별할 수 없다. 그 ‘가장 행복한 생각’은 빛이 휘고 높이에 따라 시계가 다르게 가야 한다는 결론까지 끌어냈다. 하지만 등가원리는 나침반이지 지도는 아니었다. 더구나 엘리베이터 한 칸에서는 중력을 지울 수 있어도, 나란히 낙하하는 두 물체가 조금씩 가까워지는 조석효과까지 없앨 수는 없다.

한 점에서는 사라지지만 넓은 영역에서는 끝내 남는 중력을 무엇으로 표현해야 하는가?

그 답을 찾는 8년 동안 아인슈타인은 필요한 수학을 몰라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고, 정답 가까이 갔다가 스스로 돌아섰으며, 틀린 방정식을 2년 넘게 옹호했다. 이 길은 혼자 닦은 길도 아니었다. 리만은 아인슈타인이 태어나기도 전에 휘어진 공간의 문을 열었다. 그로스만은 그 문으로 들어가는 수학을 찾아 친구의 책상 위에 펼쳤다. 힐베르트는 마지막 순간 같은 결승선을 향해 달려오며 아인슈타인의 탐색을 재촉했다. 이 세 사람의 이야기가 아인슈타인의 중력 문제로 차례로 흘러든다. “중력은 시공간의 곡률이다”라는 문장은 그 흐름들이 만나는 결말이다.

1. 빛은 휘었지만 이론은 서 있지 못했다

1912년 아인슈타인은 중력장을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속도 하나로 나타내려 했다. 그러나 자기 선형 방정식이 작용·반작용의 균형을 깨뜨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결과를 숨기지 않았다.

“이 반작용 원리 위반을 해소하는 유일한 길은 … 다른 방정식으로 바꾸는 것뿐이다. … 이 발걸음을 내딛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로써 ‘무조건적 등가원리’의 토대를 떠나게 되기 때문이다. 등가원리는 오직 무한소 크기의 장에 대해서만 유지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정적 중력장 이론에 관하여」, 1912

등가원리를 버린 것이 아니라 더 정교하게 만든 순간이었다. 중력과 가속은 아주 작은 영역에서만 구별되지 않는다. 중력장 자체의 에너지도 다시 중력의 원천이 되므로 이론은 비선형이어야 했다. 그러나 함수 하나로는 위치와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자와 시계의 모든 관계를 담을 수 없었다.

2. 회전 원판에서 자와 시계가 반란을 일으키다

회전 원판의 중심과 가장자리에 같은 시계를 놓자. 가장자리 시계는 운동하므로 중심 시계보다 느리게 간다. 원판 위 관찰자가 자신은 정지했고 바깥쪽 중력장이 있다고 해석한다면, 중력장에서는 장소에 따라 시간의 흐름이 달라지는 셈이다.

“가장자리의 시계는 중심의 시계보다 계속 느리게 간다. 그러므로 … 모든 중력장에서 시계는 놓인 위치에 따라 더 빠르게 또는 더 느리게 간다.” — 『상대성이론: 특수이론과 일반이론』 제23장

측정봉도 문제를 일으킨다. 원판 위 관찰자가 자를 들고 둘레를 한 바퀴 잰 뒤 지름을 재어 보자. 원주 방향의 막대는 운동 방향으로 수축하지만 반지름 방향의 막대는 같은 방식으로 수축하지 않는다. 초등학교에서 배운 대로 원주를 지름으로 나누었는데 π가 나오지 않는다. 시계는 서로 박자를 맞추지 못하고, 문구점에서 산 자는 원의 가장 유명한 규칙에 반란을 일으킨다.

“유클리드기하학의 명제들이 회전 원판에서는 정확히 성립할 수 없으며, 더 일반적으로 중력장에서도 정확히 성립할 수 없음을 증명한다.” — 『상대성이론: 특수이론과 일반이론』 제23장

중력은 물체의 궤도만 바꾸지 않았다. 위치를 재는 자와 시각을 재는 시계, 곧 측정의 바탕을 바꾸었다. 원판이 바깥 차원에서 그릇처럼 휘었다는 뜻도 아니다. 내부 관찰자가 자기 자와 시계만으로 유클리드 규칙의 실패를 알아낸다. 훗날 아인슈타인은 이 전환을 이렇게 말했다.

“수학의 명제들이 현실을 가리키는 한 그것들은 확실하지 않으며, 그것들이 확실한 한 현실을 가리키지 않는다.” — 「기하학과 경험」, 1921

실제 자와 시계를 포함한 ‘실천기하학’은 경험으로 판정되는 물리학이었다. 그러나 1912년의 그는 이 생각을 쓸 수학을 몰랐다.

3. 리만이 연 문, 그로스만이 놓은 다리

마르셀 그로스만 초상

마르셀 그로스만(1878–1936) — 리만 기하학과 텐서 해석을 찾아 아인슈타인이 중력을 기하학으로 옮길 수 있게 했다.

이 이야기의 첫 번째 인물은 베른의 특허청이나 취리히의 강의실이 아니라 그보다 반세기 앞선 괴팅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1854년 베른하르트 리만은 공간이 반드시 평평해야 할 이유는 없으며, 공간의 곡률을 그 내부의 거리 측정으로 알아낼 수 있다는 길을 열었다. 그것은 당시에는 대담한 수학의 가능성이었지만, 훗날 중력을 담을 그릇이 된다. 리만은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을 예견한 것이 아니다. 다만 아인슈타인이 막다른 곳에 도착했을 때 통과할 수 있는 문을 미리 만들어 두었다.

그 문까지 아인슈타인을 데려간 두 번째 인물이 마르셀 그로스만이었다. 그는 학창 시절 아인슈타인에게 강의 노트를 빌려주고, 훗날 그의 특허청 취업에도 도움을 준 친구였다. 중력 문제에 막힌 아인슈타인은 다시 그를 찾았다. “그로스만, 나 좀 도와줘. 안 그러면 난 미쳐버릴 거야!”라는 다급한 호소가 전해진다.

그로스만은 답을 새로 발명하기보다 도서관으로 갔다. 그곳에는 리만의 곡률 기하학에서 발전해 나온 텐서 수학이 있었다. 임의로 좌표를 바꾸어도 물리적 관계를 잃지 않는 언어였다. 그로스만이 그 언어를 찾아냈을 때 리만이 열어 둔 문과 아인슈타인의 중력 문제가 처음 연결되었다. 리만은 가능성을 열었고, 그로스만은 그것이 지금 친구에게 필요한 도구임을 알아보았다.

여기서 gμν가 등장한다. 이것은 괴상한 암호가 아니라 가까운 두 사건 사이의 거리와 시간 간격을 정하는 표다.

ds² = gμν dxμ dxν

중력장에서는 이 측정 규칙이 위치마다 달라진다. 계량이 정해지면 자유로운 물체가 따를 가장 곧은 길, 곧 측지선도 정해진다. 사과와 행성은 보이지 않는 줄에 끌리는 대신 휘어진 시공간의 측지선을 따른다. 이때 휘어진 것은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을 포함한 측정 관계 전체다.

계량은 자와 시계의 규칙, 측지선은 자유낙하의 길, 곡률은 넓은 영역에서 끝내 지울 수 없는 조석효과다. 엘리베이터의 직관이 마침내 수학의 언어를 얻었다. 그러나 두 친구는 정답 가까이에서 돌아서고 만다.

4. 정답을 손에 들고도 버리다

1913년 두 사람의 「일반화된 상대성이론과 중력이론의 초안」에는 계량텐서와 측지선, 에너지-운동량텐서, 리만기하학이 모였다. 흔히 독일어 제목을 따라 ‘초안 이론’이라고 부르는 이 작업은 제6장의 상자에서 다시 출발한다.

“상자 속에 갇힌 관찰자는, 그 상자가 정적 중력장 속에 정지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중력장이 없는 공간에서 […] 가속운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도 구별할 수 없다.” — 아인슈타인·그로스만, 「일반화된 상대성이론과 중력이론의 초안」, 1913

그로스만은 훗날 정답의 핵심이 될 곡률 텐서의 후보까지 제시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그것이 뉴턴 이론으로 돌아가지 않고 에너지 보존도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잘못 판단했다. 모든 좌표변환을 허용하면 해가 유일하지 않다는 ‘구멍 논증’도 일반공변성을 포기하게 했다.

“임의의 변환에 대해 공변임이 판명되는 중력방정식을 세우는 일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 아인슈타인·그로스만, 「일반화된 상대성이론과 중력이론의 초안」, 1913

이 초안 이론은 실패했지만 헛수고는 아니었다. 중력이 계량이고 자유낙하가 측지선이며 중력장 에너지도 원천에 참여한다는 구조를 처음 하나로 묶었다. 실패한 이유까지 기록했기에 훗날 되돌아갈 길도 남겼다.

5. 가장 힘든 경쟁자는 과거의 자신이었다

1915년 가을, 아인슈타인은 자신과 그로스만이 1913년에 제시한 초안 이론의 결함을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책상 위에는 계산지가 쌓였고, 괴팅겐에서는 힐베르트가 같은 문제를 추적하고 있었다. 오늘의 아인슈타인이 식 하나를 고칠 때마다 어제의 아인슈타인이 “그 길은 안 된다”고 붙잡는 형국이었다. 가장 힘든 경쟁자는 힐베르트가 아니라 1913년의 자기 자신이었다.

좌표는 자연에 붙은 꼬리표가 아니라 우리가 사건에 붙인 이름이다. 좌표값이 달라도 사건들의 만남, 시계의 간격, 입자의 세계선이 같다면 같은 현실이다. 그 차이를 서로 다른 해라고 여긴 것이 구멍 논증의 함정이었다. 일반공변성으로 돌아갈 길이 열렸다.

그래도 세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했다. 어떤 좌표에서도 같은 법칙이어야 하고, 에너지가 보존되어야 하며, 약한 장에서는 뉴턴 이론으로 돌아가야 했다. 11월의 네 논문은 이 세 자물쇠를 여는 네 차례의 공개 수정이었다.

6. 11월 4일과 11일 — 자기 이론을 무너뜨리다

11월 4일 논문의 첫머리에서 그는 선언했다.

“나는, 내가 앞서 제시했던 장방정식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었고, 그 대신 그 방정식들을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좁혀낼 다른 길을 찾았다.” — 「일반상대성이론에 관하여」, 1915년 11월 4일

그는 1913년에 그로스만과 함께 검토했다가 버린 곡률의 길로 돌아왔다. 아직 좌표변환의 제한과 물질 텐서의 조건이 남았고, 11일 논문에서도 그것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두 논문의 감동은 완전함에 있지 않다. 2년 동안 지킨 이론을 스스로 폐기하고, 리만이 열고 그로스만이 안내했던 갈림길로 되돌아간 데 있다. 그는 명성을 보호하는 대신 방정식을 의심했다.

7. 11월 18일 — 마지막 한 주를 버티게 한 신호

완성 직전의 방정식을 수성 궤도에 적용하자 오랫동안 설명되지 않던 작은 차이가 맞아떨어졌다. 아인슈타인은 에렌페스트에게 자신이 “기쁨에 겨워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여기서는 그 결과가 8년의 방황 끝에 그에게 확신을 주었고, 마지막 일주일의 수정을 밀어 주었다는 사실만 기억해 두자. 수성 관측의 역사와 43초각의 의미, 계산과 검증은 다음 장에서 본격적으로 다룬다.

8. 11월 25일 — 물질과 곡률이 마주 보다

인터랙티브 시각자료 — 장방정식의 의미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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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뒤 최종 형태가 나왔다. 일반공변성, 보존법칙, 뉴턴 극한이라는 세 자물쇠가 함께 열렸다.

Gμν = (8πG/c⁴)Tμν

오른쪽 Tμν는 물질과 에너지의 밀도·흐름·압력을, 왼쪽 Gμν는 시공간 곡률의 특정 조합을 담는다. 오른쪽이 ‘우주에 무엇이 있는가’를 말하면 왼쪽은 ‘그 때문에 자와 시계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답한다. 장방정식이 계량을 정하고 계량이 물체와 빛의 측지선을 정한다. 힘이 사라진 자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이 아니다. 더 깊은 구조가 남았다.

9. 비어 있는 공간도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1920년 아인슈타인은 이 동적인 배경을 옛말을 빌려 ‘에테르’라 불렀다.

“‘빈 공간’이 물리적 관계에서 균질하지도 등방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상태를 열 개의 함수, 곧 중력 퍼텐셜 gμν로 기술하도록 강요한다.” — 「에테르와 상대성이론」

그것은 물질 매질이 아니었다. 오늘날에는 계량장 또는 시공간의 기하라고 부른다. 뉴턴에게 공간과 시간은 고정된 무대였지만, 아인슈타인에게 무대 자체가 물질과 상호작용하고 물리학의 일부가 되었다.

“일반공변방정식으로의 이행이라는 결정적 발걸음은, 만약 위와 같은 해석이 그 발판이 되어주지 않았더라면 결코 내디뎌지지 않았을 것이다.” — 「기하학과 경험」, 1921

10. 힐베르트와 나란히 선 결승선

다비트 힐베르트 초상

다비트 힐베르트(1862–1943) — 괴팅겐에서 장방정식의 수학적 구조를 독자적으로 밀어붙이며 아인슈타인과 같은 결승선을 향했다.

힐베르트는 변분원리에서 같은 문제를 추적했다. 제출본·교정쇄·출판본이 서로 달라 우선권을 한 날짜의 승패로 정리할 수는 없다. 아인슈타인은 등가원리와 뉴턴 극한에서, 힐베르트는 수학적 구조에서 와 거의 같은 시기에 수렴했다. 경쟁 중 감정도 상했지만 아인슈타인은 12월 20일 먼저 손을 내밀었다.

“저는 거기서 비롯된 씁쓸한 감정과 싸워 완전히 이겨 냈습니다. … 이 초라한 세상에서 어느 정도 스스로를 해방시킨 두 사람이 서로에게 기쁨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객관적으로 유감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 아인슈타인이 힐베르트에게

이제 세 사람의 이야기가 한곳에서 만난다. 리만은 휘어진 공간이라는 문을 열었다. 그로스만은 그 문을 찾아 아인슈타인 앞에 놓고 함께 첫 다리를 건넜다. 힐베르트는 다른 방향에서 같은 결승선으로 다가오며 마지막 탐색을 날카롭게 했다. 이들은 장방정식 뒤에 붙는 공헌자 명단이 아니다. 리만의 문이 없었다면 그로스만의 안내가 시작될 수 없었고, 그로스만의 다리가 없었다면 아인슈타인은 힐베르트와 같은 결승선에 설 수 없었다.

아인슈타인의 위대함도 모든 조각을 혼자 발명한 데 있지 않다. 리만의 가능성, 그로스만의 우정과 수학, 힐베르트의 경쟁적 자극을 ‘중력이란 무엇인가’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끌어당기고, 자기 오류까지 넘어 새 문법으로 만든 데 있다. 세 길이 그에게로 흘러들었고, 그에게서 하나의 이론이 되어 다시 세계로 흘러나갔다.

11. 뉴턴은 패배하지 않았다

일반상대론은 약한 중력과 느린 운동에서 뉴턴 이론으로 돌아간다. 뉴턴을 폐기한 것이 아니라 그의 이론이 어디까지 정확한지를 밝혔다. 작은 지도에서는 평면기하학이 충분하지만 지구 전체에는 구면기하학이 필요한 것과 같다. 새 이론은 옛 성공을 보존하면서 수성의 잔차, 빛의 휨, 중력적 시간 변화까지 설명해야 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형성 원전 모아보기

다음 장으로 — 방정식이 하늘을 올려다보다

1915년 11월 25일, 아인슈타인은 마침내 중력이 무엇인지 말하는 방정식을 얻었다. 그러나 아름다움만으로 자연법칙이 되지는 않는다. 하늘에는 세 질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성의 43초각, 태양 곁의 별빛, 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시계다.

다음 장에서 방정식은 종이를 떠나 수성과 태양과 별빛 앞으로 나간다. 세계는 거의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이론이 실제 하늘을 맞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이 장의 인물

베른하르트 리만 초상

베른하르트 리만 P04

1826–1866

「기하학의 기초를 이루는 가설에 관하여」(1854년 강연, 1868년 출판)

평평하지 않은, 곡률을 지닌 공간을 다룰 수 있는 일반적인 기하학의 틀을 마련했다.

다음 단계에 건넨 것
반세기 뒤 그로스만을 거쳐 아인슈타인에게 전달될 중력의 기하학적 언어를 미리 준비해 두었다.

마르셀 그로스만 초상

마르셀 그로스만 P12

1878–1936

「일반화된 상대성이론과 중력이론의 초안」(아인슈타인과 공동, 1913)

취리히 공과대학 동창이었던 아인슈타인에게 리만 기하학과 텐서 계산법을 소개하고 1913년 '엔트부르프' 이론을 함께 썼다.

다음 단계에 건넨 것
수학의 언어를 물리학자에게 건네, 2년 뒤 완성될 장방정식으로 가는 다리를 놓았다.

다비트 힐베르트 초상

다비트 힐베르트 P13

1862–1943

「물리학의 기초에 관하여」(1915)

변분 원리에서 출발해 아인슈타인과 거의 같은 시기에 중력장방정식에 도달했다.

다음 단계에 건넨 것
독립적으로 도달한 같은 결론은 우선권 논쟁을 낳았지만, 동시에 장방정식이 개인의 직관을 넘어선 필연적 구조임을 보여 주었다.

아인슈타인 원전 — 일반상대성이론에 관하여 D12a

Zur allgemeinen Relativitätstheorie · 1915 · Sitzungsberichte der Preuß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 1915, 778–786쪽 (11월 4일 발표)

엔트부르프를 버리고 일반공변 장방정식으로 돌아온다고 선언한, 11월 네 편 중 첫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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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식 심화

물질과 에너지는 시공간의 곡률을 정확히 얼마나 만드는가?

$$ G_{\mu\nu} = \frac{8\pi G}{c^4} T_{\mu\nu} $$

Gμν — 시공간이 휘어진 정도를 나타내는 아인슈타인 텐서 / Tμν — 물질과 에너지의 분포를 나타내는 에너지-운동량 텐서 / G — 뉴턴의 중력상수 / c — 광속

왼쪽은 '시공간이 얼마나 휘었는가', 오른쪽은 '거기에 무엇이 있는가'를 말한다. 물질이 시공간에게 어떻게 휘어질지 말해 주고, 휘어진 시공간이 물질에게 어떻게 움직일지 말해 준다 — 휠러의 유명한 요약 그대로다.

적용 한계 — 이 식 자체는 근사가 아니라 일반상대론의 정확한 기초방정식이다. 다만 실제로 풀려면(예: 슈바르츠실트 해) 물질 분포에 강한 대칭 가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당대·후대의 반응

이 장의 계보

베른하르트 리만(기하학의 기초, 1854) → 마르셀 그로스만(리만기하학·텐서계산법 소개) → 아인슈타인·그로스만 Entwurf(1913) → 아인슈타인, 11월 일반상대성이론 논문군(1915, 다비트 힐베르트와 거의 동시 도달)

그로스만이 건넨 수학의 언어가 2년 뒤 장방정식이 되었고, 힐베르트와의 우선권 논쟁은 그 결론이 개인의 직관을 넘어선 필연적 구조였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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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장

제8장 — 수성·빛·시계가 이론을 시험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