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방정식이 발견한 우주

제10장 — 정적인 우주에서 팽창 우주까지

예상 읽기 시간 약 17분

방정식은 움직이려 했고, 아인슈타인은 우주를 붙잡으려 했다

1917년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장방정식 앞에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질문을 놓았다. 태양 주위의 시공간도, 블랙홀 한 개도 아니었다. 우주 전체였다.

질문은 단순해 보였다. 별과 물질이 우주 전체에 퍼져 있다면 그 우주의 모양은 어떠한가? 그러나 장방정식은 뜻밖의 답을 내놓았다. 물질은 서로 끌어당기므로 우주는 가만히 있기 어렵다. 팽창하거나 수축해야 했다. 당시 알려진 별들의 세계는 영원히 거의 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여겨졌고, 아인슈타인 자신도 그런 우주를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방정식은 움직이려 했지만 그는 우주를 정지시키려 했다.

그래서 방정식에 새로운 항을 더했다. 우주상수 Λ였다. 이것은 계산을 속이기 위한 몰래 끼워 넣은 숫자가 아니었다. 무한한 우주에서 경계조건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물질이 관성을 어떻게 결정하는가, 중심과 가장자리 없이 유한한 우주가 가능한가라는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그 항은 중력의 끌어당김과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도록 맞춰져야 했다. 조금만 흔들려도 우주는 정지 상태를 떠난다.

아인슈타인은 우주론을 시작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자기 방정식이 열어 놓은 동적 우주를 가장 먼저 붙잡아 세운 사람이 되었다. 그 손을 하나씩 풀어낸 사람은 프리드만과 르메트르였고, 마지막 힘을 보탠 것은 망원경 앞의 천문학자들이었다.

이 장의 이야기는 누가 ‘팽창 우주를 발견했는가’를 가리는 시상식이 아니다. 서로 만나지 못한 세 종류의 지식이 어떻게 하나로 수렴했는지를 따라간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은 가능한 우주의 문법을 주었다.
프리드만은 그 문법 안에서 시간이 흐르는 우주들을 찾아냈다.
르메트르는 그 우주에 관측된 은하를 넣어 물리적 역사를 만들었다.
천문학자들은 그 역사가 실제 하늘에 남긴 거리와 빛의 흔적을 측정했다.

제1부 — 아인슈타인: 우주를 정지시키다

1. 태양의 이론을 우주 전체로 넓히다

일반상대론의 장방정식은 시공간의 곡률과 물질·에너지를 연결한다. 그렇다면 우주 전체의 물질분포를 넣으면 우주 전체의 기하도 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발상 자체가 현대 우주론의 출발이었다. 우주의 구조는 철학적 추측만이 아니라 방정식과 관측으로 다룰 물리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무한히 넓고 별들이 대략 고르게 퍼진 뉴턴 우주에는 곤란한 점이 있었다. 무한대에서 중력장을 어떻게 정할지 경계조건을 따로 주어야 했다. 또한 아인슈타인은 물체의 관성이 우주의 다른 물질과 관계없이 주어지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그는 물질이 있는 우주 자체가 관성과 기하를 결정하기를 바랐다.

그 해결책은 공간적으로 유한하지만 경계가 없는 우주였다. 지구 표면은 면적이 유한하지만 가장자리가 없다. 한 방향으로 계속 가도 낭떠러지를 만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은 이 생각을 한 차원 높여, 3차원 공간도 중심과 경계 없이 유한할 수 있다고 보았다.

“우주를 공간 차원에서 유한하고 닫힌 연속체로 볼 수 있다면 그런 경계조건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 —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른 우주론적 고찰」, 1917

이것은 우주가 더 큰 빈 공간 속에 둥근 공처럼 들어 있다는 뜻이 아니다. 우주 내부의 자와 시계로 측정한 거리 관계 자체가 닫혀 있다는 뜻이다. 훗날 아인슈타인은 구면 위에 사는 납작한 존재들을 불러내 이 낯선 생각을 설명했다.

“이 고찰의 커다란 매력은 이 존재들의 우주가 유한하면서도 아무런 경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는 데 있다.” — 『상대성이론: 특수이론과 일반이론』 제31장

구면 존재는 세계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큰 삼각형의 각과 원의 둘레를 재어 자기 공간의 곡률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주 밖에서 우주를 내려다볼 필요 없이 빛과 거리의 관계를 측정해 우주의 기하를 물을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우주론에 남긴 첫 기여는 특정한 정적 모형만이 아니었다. 우주의 크기와 모양을 내부 관측으로 판정할 수 있는 물리 문제로 만든 것이었다.

2. 우주상수라는 버팀목

빌럼 더시터 초상

빌럼 더시터(1872–1934) — 일반상대성이론의 또 다른 우주 해를 통해 물질과 우주 구조의 관계를 시험했다.

문제는 물질로 가득 찬 닫힌 우주가 저절로 정지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중력만 있으면 물질은 서로 끌어당겨 수축한다. 아인슈타인은 장방정식에 우주론적 항을 더했다.

Gμν + Λgμν = (8πG/c⁴)Tμν

그가 선택한 양의 Λ는 큰 규모에서 중력의 수축 경향을 상쇄해 균일하고 정적인 우주를 가능하게 했다. 끌어당김과 밀어냄이 정확히 균형을 이룬 우주였다.

“내가 도달할 결론은 이렇다. 지금까지 내가 주장해 온 중력장 방정식은 약간 수정되어야 한다.” —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른 우주론적 고찰」, 1917

‘약간’이라는 말과 달리 그 수정의 후일담은 거대했다. 우주상수는 한동안 버려진 항처럼 보였고, 훗날 우주의 가속팽창을 기술하는 중심 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1917년의 아인슈타인이 암흑에너지를 예견했다고 말하면 역사를 거꾸로 읽게 된다. 그는 팽창을 가속하려고 Λ를 넣은 것이 아니라 우주를 정지시키려고 넣었다.

더 근본적인 약점은 균형의 불안정성이었다. 연필을 뾰족한 끝으로 세워 놓은 것처럼, 밀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팽창이나 수축으로 멀어진다. 아인슈타인은 우주론을 방정식의 대상으로 열었지만, 그 첫 우주를 자기 시대의 정적 세계관에 맞추느라 방정식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억눌렀다.

그 억눌린 가능성을 발견한 사람이 러시아의 수학자 알렉산드르 프리드만이었다.

제2부 — 프리드만: 방정식 안에서 움직이는 우주를 발견하다

3. 정답 하나가 아니라 우주의 일생들을 계산하다

알렉산드르 프리드만 초상

알렉산드르 프리드만(1888–1925) — 아인슈타인 방정식 안에서 팽창하고 수축하는 여러 우주의 가능성을 계산했다.

프리드만은 아인슈타인의 정적 우주를 조금 고치는 데서 시작하지 않았다. 우주가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가정 자체를 내려놓았다. 큰 규모에서 우주는 균질하고 등방적이지만, 그 전체 크기는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두었다.

이를 나타내는 것이 척도인자 a(t)다. 건포도빵 반죽이 부풀면 어느 한 건포도가 중심이 아니어도 건포도 사이 거리가 함께 늘어난다. a(t)는 우주가 바깥 공간 속으로 부푸는 반지름이 아니라, 우주 내부의 큰 거리들이 시간에 따라 바뀌는 비율이다.

프리드만이 얻은 방정식은 팽창률과 물질밀도, 공간곡률, 우주상수를 연결했다. 하나의 정답 대신 여러 가능한 우주의 일생이 나왔다. 처음 팽창했다가 수축하는 우주, 계속 팽창하는 우주, 공간곡률이 서로 다른 우주들이 같은 아인슈타인 방정식 안에 있었다.

(ȧ/a)² = 8πGρ/3 − kc²/a² + Λc²/3

기호를 계산할 필요는 없다. 왼쪽은 우주의 크기가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오른쪽은 그 변화를 결정하는 물질·공간곡률·우주상수다. 프리드만의 독립적인 발견은 ‘우주가 팽창한다’는 단일 주장보다 넓었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이 우주의 현재 모양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역사까지 허용한다는 사실을 보인 것이다.

4. 저자가 자기 방정식의 해를 거부하다

1922년 프리드만의 논문을 읽은 아인슈타인은 계산을 확인하고 오류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짧은 논평에서 단정했다.

“비정적 우주에 관한 결과들은 나에게 의심스러워 보였다. 실제로 살펴보면, 거기서 제시된 해는 장방정식과 양립할 수 없음이 드러난다. […] 이는 우주반지름 R이 시간적으로 일정해야 함을 요구한다.” — 「A. 프리드만의 논문에 대한 논평」, 1922

이 반박은 단순한 수학 논쟁 이상의 무게를 가졌다. 장방정식을 만든 세계적 권위자가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수학자의 해가 자기 식과 맞지 않는다고 공개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오류는 프리드만이 아니라 아인슈타인의 계산에 있었다.

프리드만은 물러서지 않았다. 계산을 자세히 적은 편지를 보내 재검토를 요청했다. 편지가 곧장 아인슈타인의 마음을 바꾼 것은 아니었다. 프리드만의 동료 유리 크루트코프가 베를린에서 직접 문제를 설명한 뒤에야 아인슈타인은 자기 실수를 확인했다. 1923년 그는 다시 짧은 글을 냈다.

“나의 반론은 계산상의 오류에 근거한 것이었다. 나는 프리드만 씨의 결과가 옳으며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이로써 밝혀지는 바는, 장방정식이 공간 구조에 대해 정적인 해뿐만 아니라 동적인 해 또한 허용한다는 것이다.” — 「A. 프리드만의 논문에 대한 주기」, 1923

첫 논평은 권위가 계산을 너무 빨리 믿은 순간이고, 두 번째 글은 과학자가 권위보다 재계산을 택한 순간이다. 아인슈타인은 오류를 범했지만 공개적으로 철회했다. 프리드만은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이론을 저자의 선호에서 해방했다.

그렇다고 아인슈타인이 곧 팽창 우주를 물리적 현실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그는 동적 해가 수학적으로 가능하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자연이 실제로 그 해를 선택했다는 관측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았다. 이 유보에는 일리가 있었다. 프리드만 역시 1922년 논문에서 특정 우주가 현실이라고 관측적으로 확정한 것이 아니었다.

프리드만은 자신의 방정식이 천문학의 중심이 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1925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는 움직이는 우주의 수학을 열었지만, 그 수학과 은하 관측을 하나의 물리적 이야기로 묶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제3부 — 르메트르: 방정식에 관측된 은하를 넣다

5. 사제와 물리학자가 같은 우주를 바라보다

조르주 르메트르 초상

조르주 르메트르(1894–1966) — 일반상대성이론과 은하 관측을 연결해 팽창 우주의 물리적 의미를 제시했다.

조르주 르메트르는 가톨릭 사제이면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다. 이 두 정체성을 섞어 우주의 시작을 종교적 증명으로 만들려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신학과 자연과학의 질문을 구분했다. 우주의 물리적 역사는 장방정식과 관측으로 다루어야 했다.

르메트르는 프리드만처럼 동적 해를 계산했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갔다. 1927년 논문의 제목부터 ‘반지름이 증가하며 외부은하의 시선속도를 설명하는 균질한 우주’였다. 우주의 크기가 변할 수 있다는 수학과, 멀리 있는 나선성운의 빛이 붉은 쪽으로 이동한다는 관측을 한 논문 안에 놓았다.

그는 당시 발표된 은하의 거리 추정값과 적색편이 자료를 모아 거리와 후퇴속도가 대체로 비례한다는 관계와 팽창률을 계산했다. 즉 프리드만은 방정식이 움직이는 우주를 허용함을 밝혔고, 르메트르는 우리가 그 우주에 살고 있을 가능성을 관측과 연결했다.

v ≈ Hd

이 식은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큰 적색편이를 보인다는 뜻이다. 그러나 르메트르는 은하들이 고정된 빈 공간을 폭발하듯 날아간다고 보지 않았다. 우주의 척도인자 자체가 변하면서 큰 규모의 거리가 늘어난다는 일반상대론적 해석을 주었다. 관측된 적색편이가 아인슈타인의 동적 시공간과 만난 순간이었다.

6.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으로 아인슈타인을 설득하다

르메트르의 논문은 널리 읽히는 잡지에 실리지 않았고 곧바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는 아인슈타인을 직접 만나 자기 해를 설명했다. 아인슈타인은 계산의 정합성은 인정하면서도 팽창하는 우주의 물리적 해석에는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프리드만의 계산을 정정한 뒤에도 정적 우주에 대한 직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 장면에서 르메트르의 역할은 ‘아인슈타인보다 먼저 허블 법칙을 쓴 사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과 천문 관측을 함께 들고 저자에게 돌아왔다. 방정식은 동적 우주를 허용한다는 프리드만의 답에, 실제 은하가 그렇게 보인다는 두 번째 답을 덧붙였다.

1931년 르메트르는 우주의 팽창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훨씬 조밀한 초기 상태에 이른다는 ‘원시 원자’ 구상을 제안했다. 오늘날 빅뱅 이론과 그대로 같은 모형은 아니지만, 우주가 영원히 같은 모습이 아니라 물리적 기원과 역사를 가진다는 방향을 열었다. 아인슈타인의 기하는 르메트르에게서 우주의 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론과 해석만으로는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저항을 없앨 수 없었다. 관측 자료 자체가 더 분명해져야 했다. 그 자료는 한 사람의 망원경에서 한꺼번에 나온 것이 아니라 여러 천문학자가 서로 다른 반쪽을 완성하면서 만들어졌다.

제4부 — 천문학자들: 빛의 색과 거리의 사다리를 맞추다

7. 슬라이퍼가 빛의 이동을 모으다

20세기 초의 ‘나선성운’이 우리 은하 안의 구름인지, 훨씬 멀리 있는 별의 섬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베스토 슬라이퍼는 그 희미한 빛을 분광기로 나누어 스펙트럼선의 이동을 측정했다. 많은 나선성운에서 선이 붉은 쪽으로 크게 이동했다. 당시 언어로 환산하면 믿기 어려울 만큼 큰 후퇴속도였다.

슬라이퍼에게는 거리 자료가 부족했다. 그는 은하들이 빠르게 멀어지는 듯한 반쪽의 그림을 얻었지만, 멀리 있는 천체일수록 더 빨리 멀어지는지는 말할 수 없었다. 속도만으로는 팽창 법칙이 되지 않는다. 같은 천체들의 거리를 재는 다른 사다리가 필요했다.

8. 세페이드가 은하까지의 자가 되다

그 사다리의 중요한 가로대는 세페이드 변광성이었다. 밝기가 규칙적으로 변하는 별의 주기와 실제 밝기 사이의 관계를 이용하면, 겉보기 밝기와 비교해 거리를 추정할 수 있다. 이 방법 덕분에 나선성운 안에서 발견된 세페이드의 거리를 잴 수 있었고, 안드로메다 같은 천체가 우리 은하 밖의 독립된 은하임이 분명해졌다.

에드윈 허블의 결정적 강점은 모든 관측을 혼자 한 데 있지 않았다. 사용할 수 있는 거리척도를 여러 은하에 일관되게 적용해, 흩어져 있던 적색편이 자료와 같은 표 위에 놓은 데 있었다. 세로축에는 속도, 가로축에는 거리를 두자 거리가 먼 은하일수록 대체로 더 빠르게 멀어지는 관계가 나타났다.

1929년 허블의 논문에 사용된 시선속도 상당수는 슬라이퍼가 오랜 시간 측정한 것이었다. 이후 밀턴 휴메이슨은 더 희미하고 먼 은하의 스펙트럼을 얻어 관계를 넓혔다. 밤새 망원경을 안내하고 희미한 선을 사진판에 쌓는 관측 노동이 우주의 팽창률을 재는 숫자로 바뀌었다.

이 과정을 ‘허블이 팽창 우주를 혼자 발견했다’고 압축하면 세 가지가 사라진다. 슬라이퍼가 만든 적색편이 자료, 은하 거리를 가능하게 한 변광성 거리척도, 그리고 1927년에 이미 그 관계를 일반상대론의 팽창으로 해석한 르메트르다. 반대로 허블의 공헌을 단순한 재발견으로 줄여도 안 된다. 더 일관된 거리 집합으로 상관관계를 선명하게 제시하고, 더 먼 은하로 관측 프로그램을 확대한 일이 팽창 우주를 천문학의 중심 사실로 만들었다.

관측자들이 얻은 것은 우선 거리–적색편이 관계였다. 그것을 ‘공간 자체의 팽창’으로 읽는 일에는 아인슈타인의 장방정식과 프리드만·르메트르의 동적 우주가 필요했다. 관측과 이론 가운데 어느 하나만으로는 현대 우주론이 완성되지 않았다.

9. 우주는 어디를 중심으로 팽창하는가

에드윈 허블 초상

에드윈 허블(1889–1953) — 은하의 거리와 적색편이 자료를 넓혀 우주 팽창의 관측 기반을 굳혔다.

은하가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모습을 보면 지구가 폭발의 중심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균질한 팽창에는 특별한 중심이 없다. 건포도빵의 어떤 건포도에서도 다른 건포도들이 멀어지는 것처럼, 큰 규모의 모든 관측자는 자신에게서 먼 은하일수록 더 빨리 멀어지는 관계를 본다.

이 비유에도 한계가 있다. 우주가 빵 바깥의 오븐 공간으로 팽창한다는 뜻이 아니다. 일반상대론에서 변하는 것은 우주 내부의 거리척도다. 가까운 은하에서는 도플러 속도라는 말이 유용한 근사지만, 먼 우주의 적색편이는 빛이 여행하는 동안 척도인자가 변해 파장이 늘어난 효과로 설명한다.

1 + z = a₀/aₑ

aₑ는 빛이 출발할 때, a₀는 우리가 받을 때의 척도인자다. 빛의 붉어짐은 우주의 과거와 현재 크기 비율을 기록한다. 분광기 속 가느다란 선이 시공간의 역사를 품게 된 것이다.

이제 프리드만의 a(t)와 슬라이퍼·허블·휴메이슨의 사진판이 같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에게 남은 일은 자기 방정식이 아니라 자기 우주상을 수정하는 것이었다.

제5부 — 아인슈타인: 자기 우주를 내려놓다

10. 관측 앞에서 정적 우주를 포기하다

1931년 아인슈타인은 더 이상 공간 구조와 밀도가 시간에 따라 일정하다는 가정을 유지할 수 없다고 썼다.

“공간이 정적이라는 가정은 더는 정당성을 지니지 못하며, 일반상대성이론이 이 발견들을 설명해 낼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생긴다.” — 「일반상대성이론의 우주론적 문제」, 1931

중요한 것은 그가 단순히 허블의 권위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프리드만은 이미 장방정식의 동적 해를 보였고, 르메트르는 그 해를 적색편이와 연결했으며, 관측 자료는 거리–적색편이 관계를 점점 분명히 했다. 이론 내부의 가능성과 외부의 관측이 양쪽에서 정적 우주를 압박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1917년 모형이 작은 교란에도 정적 상태를 떠나는 불안정한 해라는 문제도 인정했다.

“바로 이 이유만으로도, 허블의 관측 결과는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더는 나의 당시 해에 물리적 의미를 부여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 「일반상대성이론의 우주론적 문제」, 1931

이 문장은 그의 한계와 강점을 함께 보여 준다. 한계는 방정식이 허용한 변화를 정적 우주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오래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데 있다. 강점은 자기 모형의 수학적 불안정성과 관측의 압력이 분명해지자 공개적으로 물리적 의미를 거두었다는 데 있다.

널리 알려진 ‘인생 최대의 실수’라는 말은 확실한 동시대 1차 기록이 없어 그대로 인용하지 않는다. 확인 가능한 원전 속 아인슈타인은 더 흥미롭다. 그는 극적인 한마디로 과거를 지운 것이 아니라, 어떤 가정이 더는 정당하지 않은지 조목조목 밝히고 새 모형의 한계도 함께 적었다.

11. 가장 단순한 우주와 너무 짧은 나이

1932년 아인슈타인과 더시터는 우주상수도 공간곡률도 0으로 둔 단순한 팽창 모형을 제시했다. 관측으로 직접 주어진 것은 평균밀도와 팽창이며, 당시 자료만으로 공간곡률까지 정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곡률에 대한 직접적인 관측 증거는 없으며, 직접 관측되는 자료는 오직 평균 밀도와 팽창뿐이다. … 따라서 관측된 사실만으로는 곡률의 부호도 값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 아인슈타인·더시터, 「우주의 평균 밀도와 팽창 사이의 관계에 관하여」, 1932

이 태도는 1917년과 크게 달랐다. 그때는 정적 우주라는 그림을 유지하려 새 항을 선택했다. 이제는 관측으로 정해지지 않은 가정을 덜어 내고, 더 좋은 자료가 오면 다시 판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새 팽창 모형에도 곤란이 있었다. 당시 거리척도는 은하 거리를 실제보다 작게 잡았고, 그 결과 팽창률은 지나치게 크게 추정되었다. 팽창률을 거꾸로 계산한 우주의 나이는 지질학이 말하는 지구 나이보다도 짧아지는 모순을 낳았다. 아인슈타인은 큰 시간 범위로 단순 외삽하는 일을 경계했다.

이 문제는 팽창 우주가 틀렸다는 뜻이 아니라 관측의 거리사다리와 우주모형이 아직 함께 수정되어야 한다는 신호였다. 현대 우주론은 1929년 그래프 한 장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거리 보정, 새로운 천체, 우주배경복사, 원소합성, 초신성 관측을 거치며 계속 다듬어졌다.

우주상수 역시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이 정적 우주를 위해 사용한 목적은 폐기되었지만 항 자체는 장방정식에서 허용되었다. 20세기 말 우주의 팽창이 느려지는 대신 가속된다는 관측이 나오자 Λ는 전혀 다른 경험적 맥락에서 돌아왔다. 아인슈타인의 선택은 의도한 우주를 구하지 못했지만, 그가 열어 둔 수학적 가능성은 후대 우주론의 중심 문제로 남았다.

12. 여러 사람이 발견한 하나의 우주

인터랙티브 시각자료 — 정적 우주에서 팽창 우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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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창 우주의 역사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언제나 누군가가 사라진다. 아인슈타인만 말하면 동적 우주를 거부한 시간이 지워진다. 프리드만만 말하면 관측과 연결되지 않은 수학적 가능성이 곧바로 현실이 된 것처럼 보인다. 르메트르만 말하면 관계를 선명하게 만든 관측 프로그램이 사라진다. 허블만 말하면 그의 표에 들어간 적색편이와 앞선 이론적 해석이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같은 일을 나눠 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질문을 해결했고, 앞선 답의 빈 곳이 다음 사람의 문제를 만들었다.

  1. 아인슈타인은 장방정식을 우주 전체에 적용해 이론우주론을 열었지만 정적 우주를 고집했다.
  2. 프리드만은 그 방정식이 여러 동적 역사를 허용함을 보였고, 저자의 반박을 계산으로 이겨 냈다.
  3. 르메트르는 동적 해와 은하의 적색편이를 결합해 팽창을 물리적 현실로 해석했다.
  4. 관측 천문학자들은 적색편이와 거리라는 서로 다른 측정 사슬을 연결해 해석이 버틸 경험적 토대를 만들었다.
  5. 아인슈타인은 마침내 정적 모형을 내려놓고, 관측이 허용하는 가장 단순한 동적 우주로 이동했다.

모든 흐름은 아인슈타인에게서 시작해 다시 아인슈타인에게 돌아오지만, 돌아온 아인슈타인은 출발할 때와 같지 않았다. 그의 방정식은 프리드만과 르메트르와 천문학자들을 거치며 저자의 우주관을 바꾸었다. 이것이 팽창 우주론의 진짜 중심 서사다. 한 천재가 우주를 단번에 알아본 이야기가 아니라, 위대한 이론이 다른 사람들의 계산과 관측을 받아들여 자기 창조자의 한계까지 넘어선 이야기다.

정적 우주에서 팽창 우주까지 — 아인슈타인의 우주론 원전

다음 장으로 — 팽창하는 시공간이 흔들리기 시작하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은 우주가 정지해 있으리라는 저자의 기대를 넘어 팽창하는 역사를 허용했다. 그러나 시공간은 천천히 팽창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질량이 격렬하게 움직이면 곡률의 변화가 파동이 되어 퍼질 수도 있다.

아인슈타인은 그 가능성 역시 자기 방정식에서 찾아냈다가 여러 차례 의심했다. 다음 장에서는 종이 위의 중력파가 쌍성펄서의 궤도를 줄이고, 마침내 거대한 레이저 간섭계의 두 팔을 흔들기까지 한 세기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이 장의 인물

빌럼 더시터 초상

빌럼 더시터 P15

1872–1934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과 그 천문학적 귀결에 관하여」(1917)

물질이 거의 없는 우주에서도 성립하는 장방정식의 해를 구해, 우주론적 상수와 우주의 거동 가능성을 넓혔다.

다음 단계에 건넨 것
정적이지 않은 우주도 수학적으로 가능하다는 단서를 남겨 프리드만과 르메트르의 팽창우주로 가는 길을 열었다.

알렉산드르 프리드만 초상

알렉산드르 프리드만 P17

1888–1925

「공간의 곡률에 관하여」(1922)

정적 우주만을 가정하지 않은, 시간에 따라 팽창하거나 수축할 수 있는 우주해를 장방정식에서 이끌어냈다.

다음 단계에 건넨 것
아인슈타인이 처음엔 계산 오류로 여겼던 동적 우주해를 남겨, 훗날 관측으로 확인될 팽창우주의 이론적 토대를 놓았다.

조르주 르메트르 초상

조르주 르메트르 P18

1894–1966

「일정한 질량을 가지며 반지름이 증가하는 균질 우주」(1927)

팽창하는 우주해를 은하의 후퇴 속도 관측과 연결하고, 우주가 시작을 가졌다는 '원시 원자' 개념을 제시했다.

다음 단계에 건넨 것
이론과 관측을 잇는 다리를 놓아, 허블의 관측이 팽창우주를 확증할 무대를 마련했다.

에드윈 허블 초상

에드윈 허블 P19

1889–1953

「은하계 외 성운의 거리와 시선속도 관계」(1929)

은하까지의 거리와 적색편이 사이의 관계를 관측으로 밝혀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실증했다.

다음 단계에 건넨 것
이론 속에서만 존재하던 팽창우주를 관측 가능한 현실로 옮겨,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우주항 도입을 재고하게 만들었다.

아인슈타인 원전 — 일반상대성이론의 우주론적 문제에 관하여 1-05

Zum kosmologischen Problem der allgemeinen Relativitätstheorie · 1931 · Sitzungsberichte der Preuß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 1931, 235–237쪽

정적 우주를 유지하려 도입했던 우주항을 사실상 철회한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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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식 심화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왜 더 빠르게 멀어지는가?

$$ v \approx H_0 d $$

v — 은하가 멀어지는 속도(적색편이로 관측) / d — 은하까지의 거리 / H₀ — 허블 상수

1929년 허블이 관측으로 확인한 이 비례관계는 특정 은하가 우주의 중심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균일하게 팽창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 프리드만과 르메트르가 먼저 이론으로 예측했던 바로 그 그림이다.

적용 한계 — 이 식은 비교적 가까운 우주에서만 성립하는 선형 근사다. 아주 먼 은하에서는 우주의 팽창 역사 전체를 담은 프리드만 방정식으로 계산해야 한다.

실험·관측

당대·후대의 반응

이 장의 계보

알렉산드르 프리드만 → 조르주 르메트르(독립적으로 유사한 팽창우주해 도출, 1927) → 에드윈 허블(르메트르가 먼저 제시한 관계를 관측으로 확증)

빌럼 더시터의 물질 없는 우주해가 그 사이를 잇는 다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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