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방정식이 발견한 우주
제9장 — 슈바르츠실트에서 블랙홀까지
예상 읽기 시간 약 14분
방정식이 저자보다 먼저 떠난 곳
1915년 12월, 아인슈타인은 막 완성한 중력장방정식과 씨름하고 있었다. 식은 아름다웠지만 너무 복잡했다. 실제 별 주위의 시공간을 정확히 풀어 쓸 수 있을지는 그 자신도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때 러시아 전선에서 편지가 왔다. 보낸 사람은 독일의 천문학자 카를 슈바르츠실트였다. 포탄의 궤도를 계산하며 군 복무 중이던 그는 아인슈타인의 새 방정식을 읽고, 전쟁 한복판에서 그 식의 최초 정확해를 구했다. 아인슈타인이 우주의 문법을 썼다면 슈바르츠실트는 그 문법으로 처음 완전한 문장을 만든 셈이었다.
그 문장 안에는 훗날 ‘블랙홀’이라 불릴 천체의 씨앗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도 슈바르츠실트도 그것을 블랙홀이라고 읽지 않았다. 식은 먼저 도착했고 의미는 반세기 동안 뒤따라왔다. 펜로즈는 그 의미가 완벽한 구형에만 생기는 수학적 기괴함이 아니라 중력붕괴의 일반적 귀결임을 보였다. 호킹은 거기서 다시 한 걸음 나아가, 아무것도 내보내지 않는다던 블랙홀에 온도와 수명을 부여했다.
세 사람은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질문을 품었다.
슈바르츠실트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은 실제로 무엇을 허용하는가?”를 물었다.
펜로즈는 “그 극단적 결과는 대칭을 깨뜨려도 남는가?”를 물었다.
호킹은 “그 결과에 양자론을 비추면 무엇이 달라지는가?”를 물었다.
세 이야기는 각각 완결되지만 출발점은 모두 아인슈타인의 시공간이다. 그리고 각 이야기의 결말이 다음 이야기의 문제를 만든다.
제1부 — 슈바르츠실트: 전선에서 풀어낸 아인슈타인의 우주
1. 포탄의 궤도 옆에서 별의 시공간을 계산하다

카를 슈바르츠실트(1873–1916) — 전선에서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첫 정확한 해를 찾아냈다.
슈바르츠실트는 평범한 이론가가 아니었다. 천문대장이었고 관측과 수학을 함께 다룰 줄 알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마흔을 넘긴 나이에도 군에 자원했고, 전선에서는 탄도와 기상 관측을 맡았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1915년 11월 아인슈타인의 새 장방정식을 접했다.
아인슈타인의 식은 물질과 에너지가 시공간을 어떻게 휘게 하는지 말했지만, 일반적인 경우에는 여러 성분이 서로 얽힌 비선형 방정식이었다. 슈바르츠실트는 문제를 단순하게 만들되 하찮게 만들지는 않았다. 질량이 회전하지 않고 완전한 구대칭이며, 그 바깥은 진공이라고 가정했다. 태양 바깥 공간을 생각하면 되는 조건이었다.
그가 찾은 해의 놀라움은 근사가 아니라 정확하다는 데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수성 계산에서 여러 근사를 사용했지만, 슈바르츠실트는 구대칭이라는 조건 아래 장방정식을 완전히 풀었다. 논문 첫머리에서 그는 아인슈타인이 수성 논문에서 제기한 문제를 이어받았다고 밝혔다. 즉 그의 독립된 계산은 처음부터 아인슈타인의 질문에 대한 응답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이 결과를 크게 반겼고 프로이센 과학아카데미에 대신 제출했다. 장방정식이 단지 원리의 선언이 아니라 실제 천체 주위의 시공간을 정확히 결정할 수 있음이 몇 주 만에 증명된 것이다. 그러나 해를 얻은 기쁨 뒤에는 이상한 반지름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2. 아무 일도 없는 곳에서 식이 멈추다
슈바르츠실트 해에는 질량에 따라 정해지는 특징적인 길이가 나타난다.
rₛ = 2GM/c²
오늘날 이를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이라 부른다. 초기 좌표로 식을 쓰면 r=rₛ에서 일부 성분이 0 또는 무한대로 향한다. 계산만 보면 시공간이 그곳에서 고장 난 듯했다. 중심 r=0의 문제와 이 반지름의 문제가 같은 종류인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여기서 해와 해석이 갈라졌다. 식은 정확했지만, 좌표가 이상해지는 것과 자연이 실제로 파괴되는 것을 구별할 개념이 아직 없었다. 지구의 경도를 표시할 때 북극에서 모든 경선이 만난다고 지구 표면이 찢어진 것은 아니다. 좌표표시가 특수해진 것이다. 슈바르츠실트 반지름도 적절한 좌표로 바꾸면 시공간 자체는 매끄럽다. 하지만 그것을 명확히 이해하는 데 수십 년이 필요했다.
오늘날 사건지평선은 힘이 무한해지는 벽이나 단단한 표면이 아니다. 그 안쪽에서는 미래를 향하는 모든 빛길이 더 작은 반지름으로 향하여 바깥 우주로 돌아올 수 없다. 한 지점의 물질이 아니라 인과관계의 경계다. 흔히 ‘탈출속도가 빛의 속도인 곳’이라 설명하지만, 그것은 값을 기억하기 위한 뉴턴식 비유일 뿐 사건지평선의 완전한 뜻은 아니다.
슈바르츠실트는 이 미래를 보지 못했다. 전선에서 얻은 병으로 귀환한 뒤 1916년 42세에 세상을 떠났다. 자기 이름이 검은 천체의 반지름이 되고, 한 세기 뒤 그 천체의 그림자를 망원경으로 보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가 아인슈타인에게 남긴 것은 완성된 블랙홀 이론이 아니라,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이 저자도 예상하지 못한 곳까지 간다는 첫 증거였다.
3. 아인슈타인은 자기 방정식의 결론 앞에서 멈추다
해가 존재한다고 자연이 그런 천체를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 질량을 슈바르츠실트 반지름 안으로 실제 압축할 수 있는가? 아인슈타인은 여기에 회의적이었다.
1939년 그는 원운동하는 입자들로 이루어진 구대칭·정지 성단을 연구했다. 입자 속도가 빛보다 빨라질 수 없다는 조건 때문에 성단은 일정 한계 아래로 압축되지 않았다. 그는 그 결과를 더 일반적인 물질에도 적용할 수 있으리라 보았다.
“실제로 중력을 일으키는 질량들의 도움으로 이런 특이점을 담은 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한가, 아니면 물리적 실재성을 지니는 경우에는 g₄₄가 0이 되는 이런 영역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가?” — 「다수의 중력질량으로 이루어진 정지계에 관하여」, 1939
그리고 결론을 분명히 했다.
“이 연구의 본질적인 결론은, 어째서 ‘슈바르츠실트 특이점’이 물리적 실재로서는 존재하지 않는가에 대한 분명한 이해다. … 물질을 임의로 조밀하게 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보면 그의 모형은 너무 얌전했다. 입자들이 안정적으로 원운동하는 정지 상태를 가정했기 때문에, 압력을 잃고 시간에 따라 무너지는 별을 다루지 못했다. 바로 같은 해 동적인 구형 물질구름을 계산한 연구는 충분히 무거운 별이 계속 붕괴해 바깥과 인과적으로 단절되는 방향으로 간다는 사실을 보였다.
인물 이야기 보기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이야기 → 하틀랜드 스나이더의 이야기 → 존 아치볼드 휠러의 이야기 →
이 실패는 아인슈타인의 업적을 줄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론과 저자의 관계를 보여 준다. 방정식을 만든 사람도 그 모든 해의 물리적 의미를 독점하지 못한다. 슈바르츠실트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안에서 한 가능성을 발견했고, 아인슈타인은 그 가능성이 자연에 실현된다는 결론 앞에서 멈췄다. 다음 세대의 과제는 누가 더 권위 있는가가 아니라, 정지한 이상모형을 벗어나도 붕괴가 계속되는지를 증명하는 일이었다.
4. 다리와 붕괴와 회전 — 다음 질문을 준비한 세 장면

로이 커(1934– ) — 회전하는 천체의 시공간 해를 찾아 현실의 블랙홀을 설명할 핵심 도구를 마련했다.
아인슈타인은 특이점을 싫어했다. 1935년 로젠과 함께 슈바르츠실트 해의 두 시트를 잇는 ‘다리’를 이용해 특이점 없는 입자 모형을 만들려 했다.
“특이점은 이론에 너무나 많은 자의성을 끌어들여서, 사실상 그 법칙들을 무효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 모든 장이론은 마땅히 ‘장의 특이점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근본 원리를 지켜야 한다.” — 아인슈타인·로젠, 「일반상대성이론의 입자 문제」, 1935
이 아인슈타인–로젠 다리는 오늘날 대중문화의 통과 가능한 웜홀을 만들려는 장치가 아니었다. 입자를 장 밖에서 따로 넣지 않고 장 자체의 매끄러운 구조로 설명하려는 시도였다. 아인슈타인은 끝까지 특이점 없는 완결된 장이론을 원했다.
그러나 동적 붕괴 연구는 별이 정지해 있으리라는 보장을 없앴고, 새로운 좌표는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이 물리적 파괴점이 아니라 통과 가능한 지평선임을 밝혔다. 1963년에는 회전하는 질량의 정확해가 발견되었다. 실제 별은 회전하므로 블랙홀도 구형으로만 남지 않는다. 회전 블랙홀에는 지평선 바깥에 시공간 끌림이 극심한 에르고영역이 생긴다.
이 중간 성취들은 슈바르츠실트의 이야기를 지우지 않았다. 그의 정적인 구대칭 해를 동적인 탄생과 회전하는 현실로 넓혔다. 하지만 의심 하나는 남았다. 붕괴가 가능하다는 계산들은 여전히 대칭을 강하게 가정했다. 완벽한 구형이 조금만 찌그러져도 특이한 결말이 사라지지 않을까? 이 질문이 두 번째 주인공을 불러낸다.
제2부 — 펜로즈: 완벽한 구를 깨뜨리고도 남은 운명
5. 블랙홀이 아니라 시공간 전체를 보다

로저 펜로즈(1931– ) — 완벽한 구대칭 없이도 중력 붕괴가 시공간의 길을 끝낼 수 있음을 보였다.
1960년대 초 블랙홀은 더 이상 기묘한 식 하나가 아니었다. 매우 밝고 먼 퀘이사가 발견되면서 작은 영역에서 막대한 에너지를 내는 천체가 실제로 무엇인지 묻게 되었다. 회전해도 풀리는 정확해가 나타났다. 중력붕괴는 다시 물리학의 중심 문제로 들어왔다.
로저 펜로즈는 기존 계산의 세부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대신 질문의 모양을 바꾸었다. 별의 밀도와 압력을 끝까지 계산하거나 완벽한 구대칭을 유지하는 대신, 시공간 전체에서 빛과 인과관계가 어떻게 배열되는지를 보았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특정 좌표에서 푸는 것보다 그 방정식이 허용하는 전역적 구조를 읽으려 한 것이다.
그가 붙잡은 핵심 개념은 ‘갇힌 면’이었다. 보통 구면에서 바깥쪽으로 쏜 빛은 퍼지고 안쪽으로 쏜 빛은 모인다. 그러나 중력이 충분히 강한 붕괴 영역에서는 바깥쪽으로 향한 빛조차 면적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모인다. 안팎 어느 방향의 빛도 미래로 갈수록 빠져나갈 출구를 넓히지 못하는 닫힌 면, 그것이 갇힌 면이다.
이 개념은 블랙홀의 모양을 미리 구형으로 정하지 않는다. 별이 울퉁불퉁하고 붕괴가 불균일해도 갇힌 면이 생겼는지를 물을 수 있다. 슈바르츠실트가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에서 하나의 정확한 지도를 그렸다면, 펜로즈는 지도의 세부와 무관하게 모든 탈출로가 어느 방향을 향하는지 판정하는 나침반을 만든 셈이었다.
6. 1965년, 특이점을 ‘장소’가 아니라 ‘길의 끝’으로 정의하다
펜로즈의 1965년 정리는 몇 가지 넓은 조건 아래 갇힌 면이 형성되면 시공간의 측지선 가운데 적어도 하나가 유한한 매개시간 뒤 더 이어질 수 없음을 보였다. 이를 측지선 불완전성이라 한다.
이 표현이 조심스러운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정리는 우주 어딘가에 무한밀도의 점이 반드시 놓인다고 그림처럼 증명하지 않는다. 고전적 일반상대론으로 정의된 자유낙하 입자나 빛의 길을 더 연장할 수 없는 경계가 생긴다고 말한다. 그 경계에서 곡률이 무한해지는지, 새로운 물리가 이어지는지는 별도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대칭의 족쇄가 풀렸다는 점이다. 특이한 결말은 슈바르츠실트의 완벽한 구가 만들어 낸 계산상의 우연이 아니었다. 실제 별처럼 찌그러지고 흔들리는 붕괴에서도 충분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아인슈타인의 시공간은 막다른 경계로 향한다.
이것이 펜로즈와 아인슈타인이 맞닿는 정확한 지점이다. 펜로즈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다른 이론으로 교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방정식을 특정 해와 좌표에서 해방해, 저자 자신이 물리적 실재를 부정했던 결론이 얼마나 일반적인지를 증명했다. 아인슈타인이 만든 기하학은 펜로즈의 전역적 방법을 만나 자기 내부에 숨겨 둔 운명을 드러냈다.
그러나 펜로즈의 정리는 또 하나의 벽도 세웠다. 고전적 일반상대론이 길의 끝을 예고한다면, 그다음은 무엇인가? 답을 얻으려면 아인슈타인의 중력과 양자론을 같은 장면에 놓아야 했다. 세 번째 이야기는 바로 그 경계에서 시작된다.
제3부 — 호킹: 검은 구멍에 온도를 묻다
7. 펜로즈의 논리를 우주의 시작으로 돌려세우다

스티븐 호킹(1942–2018) — 특이점 정리를 우주로 넓히고 블랙홀에 양자적 온도와 복사를 물었다.
젊은 스티븐 호킹은 펜로즈의 방법을 보고 방향을 뒤집었다. 붕괴하는 별에서 미래로 향하는 빛길이 끝난다면, 팽창하는 우주를 과거로 추적할 때에도 비슷한 논리를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펜로즈와 호킹의 특이점 연구는 블랙홀의 내부와 우주의 시작이 모두 고전적 시공간의 경계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은 다시 저자의 예상보다 멀리 갔다. 아인슈타인은 정적 우주를 원했고 특이점을 이론의 결함으로 여겼다. 그런데 후대의 전역적 분석은 그의 방정식이 별의 붕괴와 우주의 시작 양쪽에서 고전이론의 한계를 스스로 표시한다는 것을 보였다.
호킹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고전적 블랙홀의 사건지평선 면적은 정상적인 조건에서 줄어들지 않는다는 면적정리를 연구했다. 열역학에서 엔트로피가 줄지 않는다는 법칙과 너무 닮은 성질이었다. 처음에는 수학적 유사성처럼 보였지만, 블랙홀이 정보를 삼키면 바깥 우주의 엔트로피가 줄어드는 듯한 문제가 생겼다. 베켄슈타인은 지평선의 면적 자체가 엔트로피라고 주장했다.
호킹은 처음에 그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온도와 엔트로피가 있다면 물체는 복사를 해야 하는데, 블랙홀은 아무것도 내보내지 않는 것이 정의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반박하려면 양자장을 블랙홀 주위의 휘어진 시공간에서 계산해야 했다. 그 계산이 그의 생각을 뒤집었다.
8. 1974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곳에서 열이 나오다
1974년 호킹은 짧은 논문 「블랙홀 폭발?」을 발표했다. 멀리 있는 관측자가 보는 양자장의 입자 개념은 붕괴 전과 후에 같지 않았고, 블랙홀은 특정 온도의 열복사를 내는 것처럼 보였다. 국소적인 양자효과는 매우 작아도 우주의 긴 시간 동안 누적될 수 있었다.
Tₕ = ħc³ / (8πGMkᴮ)
온도는 질량에 반비례한다. 별 질량의 블랙홀은 극도로 차갑지만, 작은 블랙홀일수록 뜨겁고 더 빨리 에너지를 잃는다. 복사는 에너지를 운반하므로 블랙홀의 질량은 줄고, 충분히 긴 시간이 지나면 증발한다. 영원히 모든 것을 삼키기만 하던 천체에 온도와 수명이 생겼다.
흔히 사건지평선 바로 옆에서 입자와 반입자 쌍이 생겨 하나는 떨어지고 하나는 달아난다고 설명한다. 직관에는 도움이 되지만 호킹의 실제 유도를 그대로 옮긴 그림은 아니다. 핵심은 곡률 시공간에서 양자장의 진공과 입자 개념이 관측 시점과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는 데 있다.
호킹의 결과가 아인슈타인과 닿는 지점은 역설적이다. 블랙홀의 무대와 온도를 정하는 표면중력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에서 나온다. 복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양자론이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이론의 탄생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지만 그 확률적 완결성에는 끝내 불만을 품었다. 후대에는 그가 만든 두 거대한 흐름, 양자와 시공간이 블랙홀 지평선에서 만나 어느 한쪽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만들었다.
9. 호킹의 답이 더 큰 질문이 되다
열복사는 블랙홀을 이해한 결말이 아니라 새로운 위기의 시작이었다. 블랙홀이 완전히 증발하고 나온 복사가 오직 열적 정보만 담는다면, 그 안으로 들어간 물질의 양자정보는 어디로 가는가? 양자론에서는 정보가 사라지지 않아야 하지만 고전적 지평선과 호킹복사를 곧이곧대로 결합하면 사라지는 듯하다.
이 정보문제는 계산의 작은 흠이 아니다. 일반상대론과 양자론이 동시에 중요할 때 두 이론을 어떻게 하나로 묶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슈바르츠실트가 정확해를 얻었을 때 나타난 수상한 반지름은 펜로즈에게 전역적 인과의 경계가 되었고, 호킹에게 양자정보의 운명을 묻는 무대가 되었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여기서 하나로 모인다. 슈바르츠실트는 아인슈타인의 식을 풀어 블랙홀의 기하를 열었다. 펜로즈는 그 결과가 완벽한 대칭의 우연이 아니라 고전적 중력붕괴의 일반적 귀결임을 보였다. 호킹은 그 고전적 귀결에 양자론을 비추어 블랙홀이 복사하고 증발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아인슈타인은 세 사람 모두의 출발점이지만 세 사람의 결론을 미리 소유하지는 않았다. 이것이 위대한 이론의 특징이다. 저자의 권위를 반복하게 하지 않고, 후대가 더 멀리 가고 때로는 저자의 믿음까지 반박할 수 있는 길을 연다.
아인슈타인이 특이점과 입자 문제를 다룬 원전 모아보기
다음 장으로 — 한 별의 끝에서 우주 전체로
슈바르츠실트는 한 구형 질량 바깥의 시공간을 풀었다. 펜로즈는 붕괴가 대칭을 넘어 일반적인 운명일 수 있음을 보였고, 호킹은 그 끝에 양자론의 질문을 놓았다. 블랙홀은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이 한 별의 극단에서 어디까지 가는지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같은 방정식은 한 별만이 아니라 우주 전체의 기하도 결정한다.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정적이기를 바랐지만 방정식은 팽창과 수축을 허용했다. 다음 장에서는 또다시 저자의 기대를 넘어선 장방정식이 프리드만과 르메트르를 만나 어떻게 움직이는 우주가 되었는지 따라간다.
이 장의 인물
카를 슈바르츠실트 P14
1873–1916
「아인슈타인의 이론에서 질점의 중력장에 관하여」(1916)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중에도 아인슈타인의 장방정식을 풀어 최초의 정확한 해를 구했다.
다음 단계에 건넨 것
그 해 속에 숨어 있던 특이점이 훗날 블랙홀 개념으로 자라날 씨앗을 남겼다.
로이 커 P23
1934–
「회전하는 질량의 중력장」(1963)
회전하는 블랙홀을 기술하는 장방정식의 정확한 해를 구했다.
다음 단계에 건넨 것
정지한 블랙홀 너머, 실제 우주에 존재할 회전하는 블랙홀을 다룰 수 있는 수학을 남겼다.
로저 펜로즈 P24
1931–
「중력붕괴와 시공간 특이점」(1965)
위상수학적 방법으로 충분히 무거운 별의 중력붕괴가 반드시 특이점에 이른다는 것을 증명했다.
다음 단계에 건넨 것
블랙홀의 존재가 특수한 대칭이 아니라 일반적인 결과임을 보여, 호킹과의 특이점 정리로 이어지는 길을 놓았다.
스티븐 호킹 P25
1942–2018
「블랙홀의 폭발?」(1974)
펜로즈와 함께 특이점 정리를 우주 전체로 확장했고, 블랙홀이 양자효과로 복사를 방출하며 서서히 사라질 수 있음을 보였다.
다음 단계에 건넨 것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고 여겨졌던 블랙홀에 양자역학이 스며들 틈을 남겨, 중력과 양자론을 함께 물어야 할 이유를 후대에 넘겼다.
아인슈타인 원전 — 다수의 중력질량으로 이루어진 구대칭 정지계에 관하여 1-10
슈바르츠실트 특이점까지 별이 무한히 수축할 수 없다고 주장한, 아인슈타인이 블랙홀에 회의적이었음을 보여주는 논문.
수식 심화
얼마나 작게 압축해야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천체가 되는가?
$$ r_s = \frac{2GM}{c^2} $$
rₛ — 슈바르츠실트 반지름 / G — 중력상수 / M — 천체의 질량 / c — 광속
질량 M을 반지름 rₛ 안으로 압축하면 그 표면이 사건지평선이 된다 — 빛조차 이 안에서는 빠져나오지 못한다. 태양을 이 반지름(약 3km)까지 압축할 방법은 없지만, 무거운 별의 중심핵은 실제로 이 조건에 도달할 수 있다.
적용 한계 — 이 반지름 자체는 특이점이 아니라 좌표가 이상해지는 지점이다 — 슈바르츠실트 당시에는 이 구분이 분명하지 않았고, 펜로즈의 전역적 분석에 이르러서야 명확해졌다.
당대·후대의 반응
이 장의 계보
카를 슈바르츠실트(1916년 정확해) → 로버트 오펜하이머(중력붕괴 모형의 수학적 기반) → 하틀런드 스나이더(1939년 공동 논문) → 존 아치볼드 휠러(두 연구를 재조명)
슈바르츠실트의 순수한 수학적 해가 오펜하이머·스나이더의 물리적 모형을 거쳐, 휠러에 의해 '블랙홀'이라는 이름과 개념으로 부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