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 “상대성이론이란 무엇인가” |
원제: “Was ist Relativitäts-Theorie?” / “Time, Space, and Gravitation” (“My Theory”) 저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출처: 1919년 11월 28일 런던 《타임스(The Times)》에 게재된 기고문. 독일어 재수록: 아인슈타인, 《나의 세계상(Mein Weltbild)》(Amsterdam: Querido Verlag, 1934), 220~28쪽. 영어 동시대 재수록: Science, New Series, 51권 1305호 (1920년 1월 2일), 8~10쪽(“From the London Times”라 명기). 원문 파일 번호: 3-02 / 3-03 번역 범위: 전문 번역
이 글은 1919년 11월 6일 런던의 일식 관측 결과(에딩턴의 원정대)가 발표되어 아인슈타인이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된 직후, 런던 《타임스》의 청탁을 받아 아인슈타인이 직접 써 보낸 기고문이다. 상대성이론을 “구성적 이론(konstruktive Theorie)”과 “원리 이론(Prinzip-Theorie)”으로 구분하는 유명한 논의,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두 층으로 된 건물”에 비유하는 설명, 그리고 그 유명한 “독일에서는 독일 학자, 영국에서는 스위스 유대인”이라는 마지막 농담으로 잘 알려진 글이다.
독일어본 말미에는 세 번째 검증(적색편이)에 대해 “지금까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1919년 당시 아인슈타인 자신의 말에 편집자 주석이 붙어 “이 기준 역시 그 사이 확인되었다”고 덧붙어 있는데, 이는 1934년 재수록 시점(혹은 GHDI 편집진)에서 붙인 후대의 주석이므로 이 번역에서도 각주로 구분해 표시했다.
용어는 이 프로젝트의 기존 번역들과 통일했다: 구성적 이론/원리 이론, 관성계, 등가원리, 일반공변, 공간의 휨(굽음) 등.
귀 신문(《타임스》) 관계자로부터 “상대성”에 관해 무언가 써 달라는 청탁을 받고, 나는 기꺼이 이에 응하고자 한다. 예전에는 활발했던 학자들 사이의 국제적 관계가 개탄스럽게 무너진 지금, 이는 나에게 영국의 천문학자와 물리학자들에 대한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반가운 기회이기 때문이다. 귀국의 뛰어난 연구자들이 많은 시간과 노고를, 귀국의 학술 기관들이 막대한 물적 수단을 들여, 전쟁 중에 적국에서 완성되고 발표된 이론의 한 귀결을 검증했다는 것은, 귀국의 학문적 작업이 지녀온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전통에 온전히 부합하는 일이다. 태양의 중력장이 광선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일이 순전히 객관적인 사안이라 하더라도, 나는 영국의 동료 학자들에게 그들의 노고에 대한 개인적인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내 이론의 가장 중요한 귀결이 검증되는 것을 아마 끝내 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리학에는 여러 종류의 이론을 구분할 수 있다. 그 대부분은 구성적 이론(konstruktive Theorie)이다. 이런 이론들은 비교적 단순한 형식체계를 바탕에 놓고 거기서부터 더 복잡한 현상들의 상(像)을 구성해내고자 한다. 예컨대 기체의 운동론은 기체의 역학적·열적·확산적 과정을 분자의 운동으로 환원하려 한다 — 즉 분자 운동이라는 가설로부터 그것을 구성해내려 한다. 어떤 일련의 자연현상을 “이해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할 때, 그것은 언제나 그 현상들을 아우르는 구성적 이론을 찾아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가장 중요한 부류의 이론들 곁에는 또 다른 부류가 있으니, 나는 이를 원리 이론(Prinzip-Theorie)이라 부르고자 한다. 이런 이론들은 종합적 방법이 아니라 분석적 방법을 쓴다. 그 출발점과 토대를 이루는 것은 가설적인 구성 요소가 아니라, 경험적으로 발견된 자연현상의 일반적 성질 — 즉 원리들이며, 이로부터 개별 현상들(혹은 그것들의 이론적 상)이 만족해야 할, 수학적으로 정식화된 조건들이 따라 나온다. 이를테면 열역학은 “영구기관은 불가능하다”는 일반적인 경험적 결과로부터, 분석적인 방법을 통해 개별 과정들이 만족해야 할 제약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구성적 이론의 장점은 완전성과 적응력과 명료함이며, 원리 이론의 장점은 논리적 완벽함과 토대의 확실성이다.
상대성이론은 원리 이론에 속한다. 그 본질을 파악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그것이 딛고 서 있는 원리들을 알아야 한다. 이 원리들을 설명하기에 앞서, 상대성이론은 마치 두 개의 별개 층으로 이루어진 건물과 같다는 것을 짚어두어야 한다 —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이라는 두 층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이 그 위에 세워지는 특수상대성이론은, 중력을 제외한 모든 물리적 과정에 관계된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의 법칙과, 그것이 다른 자연력들과 맺는 관계를 제공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어떤 물체의 운동을 기술하려면 그 운동을 준거할 또 다른 물체가 필요하다. 수레의 운동은 지면을 기준으로, 어떤 행성의 운동은 보이는 항성들 전체를 기준으로 기술된다. 물리학에서는 운동을 공간적으로 준거하는 대상이 되는 물체를 좌표계라 부른다. 예컨대 갈릴레이와 뉴턴의 역학 법칙은 오직 어떤 좌표계를 이용해야만 정식화될 수 있다.
그러나 역학의 법칙이 성립하려면 좌표계의 운동 상태를 임의로 선택할 수는 없다(그 좌표계는 “회전이 없고” “가속이 없어야” 한다). 역학에서 허용되는 이러한 좌표계를 “관성계”라 부른다. 그런데 역학에 따르면 관성계의 운동 상태는 자연에 의해 유일하게 결정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명제가 성립한다 — 어떤 관성계에 대해 상대적으로 직선을 그리며 균일하게 운동하는 좌표계는 그 자체로도 하나의 관성계다. “특수상대성원리”란 바로 이 명제를, 임의의 자연현상에 대해 일반화한 것을 뜻한다: 좌표계 \(K\)에 대해 성립하는 모든 일반적인 자연법칙은, \(K\)에 대해 균일한 병진운동을 하는 좌표계 \(K'\)에 대해서도 변함없이 성립해야 한다.
특수상대성이론이 딛고 서 있는 두 번째 원리는 “진공 광속 불변의 원리”다. 이는 다음을 말한다 — 빛은 진공에서 언제나 (운동 상태나 광원에 무관하게) 일정한 전파 속도를 갖는다. 물리학자들이 이 명제에 갖는 신뢰는 맥스웰-로렌츠 전기역학의 성공에서 비롯된다.
이 두 원리는 모두 경험에 의해 강력하게 뒷받침되지만, 논리적으로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둘을 논리적으로 통합해낸 것이 바로 특수상대성이론이며, 이는 운동학 — 즉 (물리학적 관점에서) 공간과 시간에 관한 법칙을 다루는 이론 — 을 수정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 결과, 두 사건의 동시성에 대한 진술은 오직 특정 좌표계에 대해서만 의미를 가진다는 것, 측정체의 형태와 시계가 가는 속도는 그 좌표계에 대한 운동 상태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런데 갈릴레이-뉴턴의 운동법칙을 포함한 옛 물리학은, 방금 말한 상대론적 운동학과 맞지 않았다. 이 운동학으로부터는, 만약 앞서 말한 두 가지 근본 원리가 실제로 옳다면 자연법칙이 만족해야 할 일반적인 수학적 조건들이 흘러나왔다. 물리학은 이 조건들에 맞추어 수정되어야 했다. 특히 (빠르게 움직이는) 질점에 대한 새로운 운동법칙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는 대전된 입자의 경우에서 훌륭하게 확인되었다. 특수상대성이론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물체계의 관성질량에 관한 것이었다. 즉 어떤 계의 관성은 그 에너지 함량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 드러났고, 이로써 사람들은 관성질량이 다름 아닌 잠재된 에너지일 뿐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질량 보존 법칙은 그 독립성을 잃고 에너지 보존 법칙과 하나로 합쳐졌다.
맥스웰-로렌츠 전기역학을 체계적으로 확장한 것에 지나지 않았던 특수상대성이론은, 그 자신을 넘어서는 곳까지 가리키고 있었다. 물리 법칙이 좌표계의 운동 상태에 무관해야 한다는 것이, 서로에 대해 균일한 병진운동을 하는 좌표계들에만 국한되어야 하는가? 자연이 우리가 도입한 좌표계나 그것의 운동 상태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자연을 기술하기 위해 우리가 임의로 도입한 좌표계를 써야 한다 하더라도, 그 좌표계의 운동 상태의 선택에는 어떠한 제약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 법칙들은 이러한 선택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어야 한다(일반상대성원리).
이 일반상대성원리를 실현하는 일은, 무게(중력)와 관성이 같은 상수에 의해 지배된다는 오래전부터 알려진 경험(무거운 질량과 관성질량의 동등성)에 의해 시사된다. 이를테면 뉴턴의 의미에서 어떤 관성계에 대해 상대적으로 균일하게 회전하는 좌표계를 생각해보자. 이 계에 대해 상대적으로 나타나는 원심력은, 뉴턴의 학설에 따르면 관성의 작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원심력은 마치 중력처럼 물체의 질량에 비례한다. 그렇다면 이 좌표계를 정지해 있다고 보고, 원심력을 중력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발상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고전역학은 이를 금지한다.
이 잠깐의 숙고만으로도, 일반상대성이론이 중력의 법칙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며, 이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간 결과 그 기대는 실제로 옳았음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그 길은 예상보다 훨씬 험난했는데, 유클리드 기하학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다음을 뜻한다 — 고체가 공간 속에서 배치되는 법칙은, 유클리드 기하학이 물체에 부여하는 배치 법칙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공간의 휨(굽음)”이라 말할 때 뜻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그 결과 “직선”, “평면” 등의 근본 개념들은 물리학에서 그 엄밀한 의미를 잃는다.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공간과 시간에 관한 학설, 즉 운동학이 더는 나머지 물리학과 독립적인 토대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오히려 물체의 기하학적 행태와 시계가 가는 속도는 중력장에 좌우되며, 그 중력장 자체는 다시 물질에 의해 만들어진다.
새로운 중력이론은 그 근본 원리의 측면에서는 뉴턴의 이론과 상당히 다르다. 그러나 그 실제 귀결은 뉴턴 이론과 매우 근접하게 일치하여,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제 차이를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은 다음 세 가지뿐이다: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 궤도(타원)의 회전 (수성의 경우에서 확인됨).
중력장에 의한 광선의 휘어짐 (영국의 일식 관측으로 확인됨).
상당한 질량을 가진 별에서 우리에게 오는 빛의 스펙트럼선이 붉은 쪽 끝으로 이동하는 현상 (지금까지는 확인되지 않았다).1
이 이론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은 그 논리적 완결성에 있다. 만약 이로부터 이끌어낸 단 하나의 귀결이라도 옳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다면, 이 이론은 버려져야 한다. 이론 전체를 무너뜨리지 않고서는 그것을 수정하는 일이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도, 이 이론이나 그 밖의 어떤 이론으로 인해 뉴턴의 위대한 창조가 진정한 의미에서 밀려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의 명료하고 위대한 사상은, 자연철학 영역에서 우리의 근대적 개념 체계 전체가 세워진 토대로서 앞으로도 영원히 그 뛰어난 의의를 간직할 것이다.
추가 소견. 귀 신문이 나의 개인적 사정과 생활 형편에 관해 다룬 기사들 가운데 일부는 필자의 유쾌한 상상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독자의 즐거움을 위해 상대성원리를 응용한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오늘 나는 독일에서는 “독일 학자”로, 영국에서는 “스위스 유대인”으로 불린다. 그러나 언젠가 내가 “기피 인물(bête noire)”로 취급받는 처지가 된다면, 거꾸로 나는 독일인들에게는 “스위스 유대인”이, 영국인들에게는 “독일 학자”가 될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